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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공중 폼의 변천에 따라 세계 기록은 어떻게 면했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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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높이뛰기 | 조회수 | 7731 |
높이 뛰기가 경기로 도입된 것은 1830년대이며 처음 문헌으로 남겨진 기록은 19세기 후반의 1m65였습니다. 당시의 도약 방법은 껴안은 스타일(tucked jump)로 멀리뛰기처럼 막대를 뛰어 넘어 매우 효율적이지 않은 도약법 이었습니다. 이후 높이 뛰기 기술(공중 폼)은 보다 효과적인 "바 클리어런스"를 중심으로 개량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껴안은 스타일에 이어서 가위뛰기(scis-sor style)가 채택되어 상당히 효과적으로 바를 클리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수직 방향으로의 도약력(탄력)도 늘어났습니다. 이 가위뛰기가 개량되어 1895년, 미국의 스웨니가 바 클리어런스 할 때 상체를 꺽어 허리를 트는 도약법(이프트 컷 오프)으로 1m97 이라는 당시의 대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이스턴 컷 오프는 일본에서 "정면뛰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뒤, 1912년 미국의 호라인은 바에 가까운 쪽의 다리로 도약하고 바 위에서 가로방향 자세를 취하는 웨스턴 롤(롤 오버)이라는 도약법으로 17년간 계속된 스웨니의 기록을 깨고 인류 최초의 2m 도약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 높이 뛰기 선수는 보다 효율적인 폼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레이 아웃 스타일을 실험적으로 사용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높이 뛰기의 규칙에서는 현재의 [한쪽 발로 도약해도 된다]에 덧붙여 [힙 높이 보다 머리를 밑으로 내려 바를 클리어하면 안 된다. (다이빙 스타일 금지)는 규제 때문에 효과적인 공중 폼 인데도 파울로 간주된 결과도 있었습니다. [한쪽 발로 도약해도 된다]는 규칙 개정이 이루어져 스트레들 스타일(straddle style, belly roll)을 이용한 미국의 앨브릿튼이 1936년에 2m07ㅇ르 클리어 한후 배면도가 출현하기까지 스트레들 전성시대가 이어 졌습니다. 그 동안에 높이 뛰기 선수들은 도약에서의 상승력을 높이기 위해 도움닫기 방법이나 다리를 치켜 올리는 방법을 연구, 소련을 중심으로 트레이닝법이 개발되어 세계 기록도 서서히 갱신되었습니다. 1968년의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미국의 포스베리가 지금까지의 도약 스타일과 전혀 다른 배면도(포스베리 플롭)를 이용하여 우승해 세계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배면도는 급속히 세계에 보급되어 1973년, 미국의 스톤즈가 배면도로 2m32의 세계 기록을 수립하면서 마침내 배면도의 시대가 왔다고 인식되었으나 1977년 소련의 야시첸코가 다시 스트레들로 세계기록을 2m33, 다음해에는 2m34 까지 기록을 갱신시키자 1970년대에는 배면도와 스트래들 중 어떤 도약품이 우수한 것인지에 대해 크게 논의되었습니다. 1980년대가 되면서 세계기록은 다시 배면도에 의해 서서ㅓ히 갱신되었고, 1985년에는 소련의 포바루니친에 의해 2m4에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무렵에는 배면도 이외의 도약법을 이용하는 선수가 없어졌습니다. 1989년, 쿠바의 소토마이어는 2m44(8피트)에 성공하여 야드(파운드)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인류의 멱이라고 생각했던 [8피트의 벽]을 마침내 깼습니다. 믈론 그도 배면도를 사용해서입니다. 한편 여자의 경우도 남자와 같은 과정으로 도약 폼이 변천되어 왔는데 남자와는 달리 정면뛰기 시대가 길었던 것이 특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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